원시 시대의 인류에게 스트레스란 곧 ‘맹수와의 마주침’ 같은 생존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우리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이 비상 상황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코르티솔(Cortisol) 호르몬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맹수 대신 직장 상사, 대출 이자, 인간관계 등 ‘해결되지 않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속에 살아갑니다. 몸은 여전히 원시 시대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데 환경이 바뀐 것입니다. 이 ‘진화의 불일치’가 바로 현대인의 복부 비만을 유발하는 핵심적인 생화학적 원인입니다.
오늘은 코르티솔이 어떻게 우리 몸의 대사 지도를 바꾸고, 하필이면 ‘뱃살’을 선택하는지 그 정밀한 기전을 파헤쳐 봅니다.
1. 투쟁 혹은 도피 (Fight or Flight): 비상 에너지 공급 시스템
스트레스 상황(뇌가 위협으로 인지하는 순간)이 닥치면 부신 피질에서 코르티솔이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의 가장 주된 임무는 **’당장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혈액 속에 확보하는 것’**입니다.
글리코겐 창고 개방
코르티솔은 간과 근육에 저장되어 있던 비상 식량인 ‘글리코겐’을 빠르게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혈액으로 쏟아냅니다. 맹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리 근육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현대인의 역설
문제는 현대의 스트레스 상황은 대부분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 때문에 혈당은 치솟지만 이 에너지는 사용되지 않고 혈액 속에 둥둥 떠다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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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높아진 혈당을 처리하기 위해 인슐린이 추가로 분비되고, 이 잉여 에너지는 고스란히 지방으로 다시 저장되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2. 왜 하필 ‘뱃살’인가? (The Anatomy of Visceral Fat)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팔다리가 아닌 배에만 살이 찌는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해부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코르티솔 수용체의 밀집도 차이
호르몬이 세포에 명령을 내리려면 세포 표면의 ‘수용체(Receptor)’와 결합해야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의 지방세포 중 유독 **복부 내장 지방(Visceral Fat)**에 코르티솔 수용체가 팔이나 다리의 피하 지방보다 월등히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즉,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뇌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에 에너지를 비축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내장 지방인 것입니다. 복부는 장기와 가까워 에너지를 빠르게 넣고 빼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3. 근손실의 주범: 이화 작용(Catabolism)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살을 찌울 뿐만 아니라 대사량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코르티솔이 장기간 높게 유지되면, 우리 몸은 글리코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또 다른 에너지원을 찾습니다.
바로 **’근육 단백질’**입니다.
코르티솔은 팔다리의 근육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으로 만들고, 간은 이 아미노산을 다시 포도당으로 전환합니다(당신생합성). 그 결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볼록 나오는, 대사적으로 매우 불리한 체형으로 변하게 됩니다.
요약 및 결론
코르티솔은 본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시스템이었으나, 현대 환경에서는 대사 질환의 방아쇠가 되고 있습니다.
- 코르티솔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혈당을 급격히 높입니다.
- 현대인은 높아진 혈당을 신체 활동으로 소비하지 못해 다시 지방으로 저장합니다.
- 내장 지방에는 코르티솔 수용체가 많아 스트레스성 지방 축적의 주 타깃이 됩니다.
참고 문헌 (References)
- Epel, E. S., et al. (2000).Stress and Body Shape: Stress-Induced Cortisol Secretion Is Consistently Greater Among Women With Central Fat. Psychosomatic Medicine.
- (핵심 근거: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분비된 코르티솔이 복부 지방(Central Fat) 축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힌 연구)
- Bjorntorp, P. (2001).Do stress reactions cause abdominal obesity and comorbidities? Obesity Reviews.
- (핵심 근거: 내장 지방 조직에 글루코르티코이드(코르티솔) 수용체 밀도가 높다는 해부학적 사실을 뒷받침)
- Guyton & Hall.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General Physiology of Cortisol and Metabolism)
- (핵심 근거: 코르티솔의 당 신생합성(Gluconeogenesis) 및 단백질 이화 작용 기전)
[면책 조항 (Disclaimer)] 이 콘텐츠는 인체 생리학적 원리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만성 스트레스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십시오.